대화가 필요해

고민 : 참여하기 이전

지난 5월 11일, 이태규 국회의원(국민의힘/국회교육위원회 간사)은 교사의 고의·중과실이 없는 정당한 생활지도를 아동학대범죄로 보지 않도록 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대표발의 하였습니다. 6월 1일에는 법령과 학칙으로 정해진 학생생활지도는 아동학대범죄로 보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강득구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하기도 했어요.

청소년 인권운동 단위에서는 우려를 표했습니다.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교사의 체벌/언어폭력/불합리한 지시(청소년의 정치 참여를 금한 학칙 등)처럼 학생인권이 침해받을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도 ‘정당한 생활지도’라는 명목 하에 허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에요. 때문에 6월 13일 ‘학생인권법과 청소년인권을 위한 청소년-시민전국행동’을 중심으로 개정안의 철회를 요구하는 공동 성명이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한 때 학생인권조례의 든든한 우군이었던 교사들의 반응은 사뭇 다르다는 점입니다. 철회가 아니라 오히려 이 개정안을 절실하게 지지하는 교사가 적지 않습니다. 이 개정안에 더해 교사가 아동학대로 신고 당했을 때 바로 기소당하거나 형사사건화되지 않도록 제도를 구축하는 법의 제정을 요구하는 교원 단체도 존재합니다. 이유는 물론 아동학대 신고로 인해 힘들어하는 교사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PD수첩에서도 한 차례 다루어졌지요. ‘**나는 어떻게 아동학대 교사가 되었나’** 편이 그것입니다. 아동학대 신고가 교사에게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얼마나 삶을 망치는지를 방송은 여과 없이 보여주었습니다. ‘교육의 사법화’와 날이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 민원, 교사보다 ‘학교의 명예’를 더 보호하는 학교… 이런 맥락에서 지금의 교사들이 요구하는 ‘교권 보장’이란 안전하게 일할 권리, 혹은 최소한의 생존권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의 ‘교권’ 담론이 과거의 그것과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10여 년 전 학생인권조례 운동을 막기 위해 보수세력이 가져오던 ‘교권’과, 지금의 교원 사회 일선에서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는 교권의 맥락은 결코 같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지금의 요구를 과거의 그것처럼 해석해서 ‘교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만 이야기하는 것이 제겐 너무나 위험하게 느껴졌습니다. 교사들이 느끼는 절박함, 어려움을 무시하는 것은 지금의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도, 교육의 3주체(학생, 학부모, 교사)로서 더 나은 교육을 고민하는 방향에도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요.

그렇다면 저는, 그리고 어린보라는 이 상황에서 어떤 이야기를 해야할까요? 어떻게 지금의 국면에서 상황을 풀어갈 수 있을까요? 막연한 고민 속에서 전전긍긍하던 중에, 위티에서 진행하는 내부 세미나에서 이런 내용을 주제로 발제를 요청해주셨습니다. 함께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자리이니만큼 기쁜 마음으로, 그러나 무거운 고민을 담아 참여하게 되었어요.

아동학대와 아동학대가 아닌 것

세미나에서는 저 외에 초등학교 교사이자 활동가로 활동하시는 ‘하영’님께서도 함께 발제해주셨습니다. 하영님께서는 학교에서 교사가 교육/생활지도를 하는 모습의 일부를 사례로 가져오셨습니다. 이것을 아동학대인지 아닌지 혹은 그 경계에 있는지 스펙트럼을 그려보자고 제안해주셨어요. 사례는 아래와 같습니다.

<aside> 💡 아동학대와 아동학대가 아닌 것 스펙트럼으로 구분해보기

  1. 받아쓰기 진행으로 아동의 자존감이 떨어진 사건
  2. 청소 시간에 아동들에게만 청소를 하게 한 사건
  3. 장애 아동이 다른 아동에게 위험한 행동을 하려 할 때 신체적으로 저지한 사건
  4. 손들지 않은 아동에게 발표를 하게 한 사건
  5. 급식 시간에 교사가 아동에게 야채 반찬을 먹으라고 한 사건 (다 먹게 하지는 않았음.)
  6. 아동이 수업을 방해하며 흥분하자 잠시 교실 바깥에서 아동을 쉬게 하고 오게 한 사건 </aside>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는 이 사례만 놓고 이야기를 하자니 맥락을 모르는 만큼 판단이 참 어렵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맥락이 없으니 모두가 각자의 맥락에서, 각자의 이야기에 기대어 판단을 하게 되었어요. 명백한 아동학대 혹은 명백한 교육의 일환으로 딱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상상하는 맥락 속에서 사례를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모두의 결론이 다르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 지점이 재미있으면서도 지금의 교권 논쟁에 있어 중요한 포인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의 아동학대와 아동학대가 아닌 것을 법으로, 정해진 규정으로 판단하는 방식으로는 바로 이런 지점을 결코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발생하던 그 순간의 맥락, 해당 아동의 삶에서 이 상황이 어떻게 여겨지는지의 맥락, 그 공간에서 함께 있었던 사람들의 맥락은 모두 사라진 채, 그저 그 순간의 상황만을 보고 문제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방식으로 과연 아동학대를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을까요?

지금 아동학대를 다루는 시스템이 작동되는 상황을 보면, 이런 우려를 그저 노파심으로 볼 수 없음이 명백해집니다. PD수첩에서 방영했던 ‘**나는 어떻게 아동학대 교사가 되었나’** 편은 이런 단편적인 판단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음을 잘 보여줍니다. 교사가 반을 꾸려온 방식이 어떠했는지,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학생들이 이 방식을 어떻게 받아들여왔는지, 그 날의 일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교사는 왜 그런 판단을 내렸는지, 아동은 이 과정에서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드러내었는지, 아동이 학부모에게 이 상황을 말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법적 절차에서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그저 단편적인 상황만을 잘라 간단하게 아동전문기관에 자문을 구하고, 이를 근거로 처벌 여부를 결정할 뿐입니다. 모든 것을 법으로 처리하려는 요구가 얼마나 위험한지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제출된 개정안, 그리고 교원 단체들이 추가적으로 요구하는 법안 역시 이 지점에서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많은 교사들의 염원에도 개정안 통과로 지금의 상황이 별반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는 얘기입니다. 지금의 요구안은 맥락을 살펴 판단하도록 하는 법이 아닙니다. 사실 이런 법안은 결코 쉽게 만들 수도 없으며, 만들어진다고 한들 이를 뒷받침해줄 시스템이 없는 이상 작동조차 제대로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지금의 요구안은 그저 고소/소송 타이밍을 조금 늦출 뿐, 아동학대로 고통받는 교사들을 지켜주지는 못할 것입니다.

보통의 학부모, 보통의 아동

세미나에서 또 하나 주요하게 나눈 포인트는 보통의 학부모였습니다. 방송매체와 언론을 떠들썩하게 만들 정도로 진상인 학부모의 사례가 사실 얼마나 될까요. 많은 교사들을 힘들게 하는 민원은 정말 저런 ‘악마 학부모’로 인해 대부분 발생되는 것일까요? 이야기를 나누면서 모두가 공감했던 부분은 악마 학부모가 아니라, 보통의 학부모에 오히려 더 집중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건씩 민원을 넣는 악마 학부모가 교사들을 힘들게 하겠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교사들을 괴롭게 하는 건 수없이 많은 보통의 학부모들의 가끔 넣는 민원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악마 학부모에 집중해 그 악함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사회적 공분이야 일으킬 수 있겠지만, 거기서 끝일 뿐입니다. 그 사람의 못된 심성, 민원의 비정상성에만 집중하는 과정에서 학교 시스템의 한계와 문제점은 가려집니다. 수많은 보통의 학부모들이 무엇으로 민원을 넣는지, 어떻게 반영되기를 바라는지, 학교는 민원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는 이야기되지 않습니다. 비교적 타당한 민원조차도 지금의 학교 시스템에서는 교사를 괴롭히는 폭력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 역시 말할 수 없게 됩니다. 자극적인 개인에 집중하는 것이 얼핏 지금의 문제를 드러내는 것 같지만 오히려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드는 셈입니다.

추가로 봐야 할 지점은 ‘아동’입니다. 앞서 보통의 학부모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듯, 아동 역시 ‘보통의 아동’에 주목해야 합니다. 세미나에서 저는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요, 과연 아동이 부모에게 표출한 속상함이 민원 제기를 바라고 한 말이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동의 모든 부정적 감정은 학대로 이해되어야 할까요? 혹은, 이런 감정들은 정말로 모두 민원으로 처리되어야 하는 것일까요? 물론, 어떤 아동은 정말로 교사가 큰 벌을 받기를 원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과거 경험에서도, 그리고 많은 이들의 경험 속에서도 자신의 속상함을 말하는 것은 많은 경우 그저 자신의 힘듦을 이야기하고 위로 받고 싶은 욕구일 뿐이었습니다. 지금의 사법화된 시스템이 아동의 단순히 위로받고 싶은 마음을 교사 처벌로 바꾸는데 오히려 일조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고민을 세미나에 참여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