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보라:대구청소년페미니스트모임 활동가 서홍일
1.
전교조 토론회에서 ‘참교육’이라는 단어를 쓰자니 조금 묘하지만, 이 말의 뜻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발제를 시작하려고 한다. 전교조 운동의 핵심 이념이기도 한 이 단어는, 지금 와서는 완전히 다른 뜻이 되었다. 나쁜 행동이나 상황을 단죄해서 처벌을 내린다는 뉘앙스에 가까운 의미로 훨씬 많이 쓰인다.
이런 단어도 있다. ‘사이다’라는 말이다. 사이다를 마실 때 느끼는 청량하고도 시원한 느낌을 차용하면서 유행한 말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뜻이 더욱 확장되어 고구마를 먹은 듯 답답한 모습이나 악행을 명쾌하게 단죄한다는 의미까지도 갖게 되었다.
생활지도권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에서 이게 무슨 엉뚱한 소린가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렇게 토론을 시작한 건 이 단어들이 지금의 시대정신을 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고민 때문이다.
2.
미투 고발 이후 사회는 변했다. 가해자 처벌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경각심을 갖거나 최소한 이러면 사회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감각은 공유하게 되었다. 학교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스쿨미투 이후 ‘이러면 미투로 공격받나?’ 혹은 ‘이러면 페미들한테 욕 먹겠지?’ 따위의 불쾌한 농담이 종종 나돌게 되었다는 사실조차도 학교라는 공간의 감수성이 그래도 조금은 성장했음을 증명한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교권-학생인권의 대립 구도 역시 변화를 맞는다. 무시당하는 ‘여교사’ - 성희롱하는 ‘남학생’의 구도가 대대적으로 등장한다. 이 구도가 기존의 교권 담론과 다른 것은 이 대립이 (이런저런 맥락을 감안해야 하나) 그저 허구나 거짓이라 부정할 수 없다는 점이다.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 사이의 위계, 그리고 성차별이라는 위계가 교차하는 공간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실제로 많은 여성 교사들이 어려움을 털어놓기도 하였다. 결국 교권침해라는 말은 다시 수면 위로 오른다. 학생인권을 가로막는 거짓된 담론으로만 이야기되던 교권은 이제 많은 교사들이 필요로 하는 권리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기존에 학생인권을 지지하던 교사들마저, 교권의 필요성을 두고 이전처럼 부정하기에는 어려워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오늘의 토론회는 이러한 변화를 드러내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청소년운동과 함께 학생인권조례를 앞장서서 주장하던 전교조조차 교권 보호에 대해 이야기해야만 하는 상황. 이럴 때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3.
다시, ‘참교육’과 ‘사이다’로 돌아가자. 이 단어를 두고 지금의 시대정신은 아닐까 말했던 것은 단어를 활용하는 사람들이 이런 정서를 절대적으로 지지하기 때문이다. 답답하고 막막한 상황을 ‘참교육’해버리고, 이를 통해 악인이 처벌받는 ‘사이다’ 서사는 최근 수많은 미디어에서 가장 잘 팔리는 내용이다.
미디어로만 즐기는 것일까? 최근 몇 년 사이 학교 폭력 문제가 이슈가 되었다. 이전과 다른 면은, 피해자들이 직접적으로 가해자를 특정해서 고발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피해자는 아직도 고통에 시달리는데, ‘가해자는 사회에서 버젓이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을 대중은 참지 못한다. ‘가해자’를 향해 비판, 혹은 비난을 퍼붓고 그가 ‘대중의 시야에서’ 깨끗하게 사라지기를 요구한다. 가해자를 ‘참교육’하여 평화를 되찾는 전형적인 사이다 서사가 아닌가?
돌이켜보면 미투 고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처음 촉발될 당시 논의되던 수많은 고민들은 어느 사이엔가 ‘피해자는 일상으로, 가해자는 감옥으로’라는 강력한 단일 구호로 통일되어 있었다. 가해자가 처벌받지 않는 부당한 현실이 있음을 알지만, 그것을 고려하더라도 ‘성폭력의 공동체적 해결’은 놀라울 만큼 후순위로 밀려나 있었다.
슬프게도, 나는 지금의 교권 논의 역시 이런 정서에서 크게 빗겨가고 있지 않다고 느낀다. ‘언론’도 ‘전문가’도 피해 입은 ‘교사’와 학생인권을 악용하는 ‘문제학생’ 구도만을 되풀이할 뿐이다. ‘고구마’ 같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제학생을 처벌할 ‘명확한’ 기준을 말한다. 오늘 토론문에서 올라온 자료 또한 명백한 증거다. “아동학대의 판단 기준이 ‘교육적 행위’ 여부가 아닌 ‘아동이나 학부모가 느낀 감정’ 등으로 모호하기에 나의 행동과 무관하게 ‘악의적인 신고’로 아동학대 교사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음. (p6)” “정당한 생활지도 범위 명시. (p21)” 그런데, 명확한 기준이란 게 정말 존재 가능하긴 한가? 그 기준은 정말로 깔끔한 해결을 낳을 수 있는가?
4.